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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스스로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제작한 작품입니다.

[미디어대전]10th-113. P-VIRUS

2010.09.13 | 조회수 834 키워드 | 미디어대전, KYMF

스텝

<스텝>
연출 : 정 지 원
조연출 :서 상 원
스크립터 : 이 시 내
촬영 : 조 정 현
제작 : 황 인 지
조명 : 김 동 우
미술 : 조 예 령

내용


대표자
정 지 원/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작품의도
언제나 우리의 주변엔 한강이 있었고, 봉사활동이나 소풍이라고 하면 한강시민공원으로 갔었다. 나에게 한강은 언제나 크고 재밌고 멋있는 놀이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화공간의 개발 바탕엔 한강의 물길 성형과 수질 오염이 있었다. 한강의 물길은 원래 곡선이 있는 모양이었다고 한다. 물길을 억지로 메우고 때워 일자로 늘려 한강시민공원을 만들고, 시민을 위한 듯 많은 부대시설들을 건설했다. 시민들은, 아니 나부터도 굉장히 좋게만 보였다. 하지만 우리의 한강 자체는 자정작용을 잃고, 사람들이 버리는 오염물질을 그대로 지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말 그대로 병들어 버린 우리의 한강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수질은 3년 내내 나빠지기만 한다는 기사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사람의 손을 타면서부터 한강은 그 모습으로써 발하는 빛을 잃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저 화려하고, 자신에게 편한 것만 보기 때문에 이런 한강의 아픔이나 실태를 일부러 보지 않으려 무시하는 그런 모습들도 자주 보게 되었다. 한강은 서울의 상징이자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이지만 지금은 그저 보여주기 위한 한강으로 전락해버렸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한강이 아닌 우리를 위해 자손을 위해서 아껴주는 한강으로 아주 적은 사람들의 인식이라도 돌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한강으로만 이야기하고 있지만, 크게는 우리의 자연 푸른 강산을 지키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줄거리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의 몸에 전염되어 분열하고 자손을 많이 늘리는 것이 목표이다. 바이러스들이 처음에는 입으로 안착했다. 하지만 뜨거운 커피와 찬바람에 여러 친구들을 잃는다. 혼자가 된 바이러스는 죄책감을 갖고 분열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곤 식도를 타고 들어가 휘황찬란한 겉모습과는 다른 위를 경험하게 된다. 바이러스는 더러운 위의 환경에 몸 구석구석에 큰 상처를 입고 바닥에 드러누울 지경까지 되었다. 하지만 다른 바이러스들 생각에 열심히 움직여 결국 동맥혈관에 도착한다. 하지만 동맥혈관은 바이러스가 생각하던 곳과는 달랐다. 스스로 힘차게 움직이지 못하고 다른 펌프의 힘을 빌려야만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이러스는 실망을 했다. 그 때 백혈구들이 자신의 친구를 붙잡아 가는 것을 보았다. 바이러스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친구를 구하러 뛰쳐나갔다가 자신도 같이 잡혀간다. 감옥에 갇힌 친구와 바이러스는 둘 다 몸 성한 곳이 없다. 잠시 백혈구가 둘을 끌고 나왔을 때, 바이러스가 친구를 잡아먹고 다시 재생을 한다. 백혈구는 바이러스의 이런 힘에 놀라고, 바이러스는 있는 힘껏 동맥혈관이 있는 곳까지 도망을 친다. 검붉은 적혈구를 먹고 분열을 시작한다. 뒤에는 백혈구들이 쫓아오고 바이러스는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도망치며 분열을 성공해, 바이러스의 자손들이 백혈구들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바이러스와 자손들은 다시 몸을 거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며 펌프, 네온사인, 쓰레기, 발자국, 이 사이의 음식물 등을 치우며 올라간다. 다시 다른 사람의 입으로 뛰어들고 바이러스는 성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손들을 보면서 뿌듯해한다.
촬영후기
처음 영화연출이라 굉장히 설레고 기대가 컷었습니다. 순조로이 진행되길 바라면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변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클레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잘 파악하지 못했던 탓이었습니다. 저를 도와주던 많은 스태프들에게 미안해 엉엉 울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기획으로 돌아가 캐릭터 제작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재료부터 소품, 찍는 방법까지. 새로 시작한 영화는 순조로웠습니다. 중간중간 파일을 잃어버리거나 캐릭터가 망가졌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선생님과 스태프들이 도와주었고, 한커트씩 진행되어 갈 때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보람찼었습니다. 촬영만 20여일을 학교 나올 때는 아침 7시부터 했었는데,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스태프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서도 힘든 일이 많았지만 스태프들이 뒤에서 저를 받쳐주고 이끌어주어 견딜 수 있었고,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내 생애 가장 절실했던 1달이고, 저를 변화시키고 새로 눈을 틔어준 1달이었습니다. 이 1달이 아마 먼 훗날에도 가장 가슴 속에 남는 1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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